인사 교육은 재미가 없다. 하품 나는 뻔한 내용에, 의무 교육이라 마지못해 들을 뿐 열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불쌍한 건 교육을 맡은 외부 강사다. 어떻게든 청중의 흥미를 유발해보려고 비타500걸고 퀴즈도 내고 썰렁한 유머도 구사하다가 결국 좌절해서 일찍 강좌를 끝내기 일쑤다. 그런데 어느 날 만났던 강사 하나는 좀 달랐다.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려 애쓰는 대신, 이런 질문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여기저기 강의를 다녀보면 제일 반응이 없는 집단이 있습니다. 누군지 아십니까?'
'저 강사가 무슨 사기를 치려는지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설득당하지 않겠어....라는 듯한 표정으로 묵묵부답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제일 문제가 심각한 족속들입니다. 바로 교수들입니다'
'여러분은 다르리라 믿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후부터,교육생들은 갑자기 강사의 질문에 열성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못된 족속이 아니어야 해..라는 도덕심 때문인지, 학생 시절 교수한테 쌓인게 많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사회는 무척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가치관이나 문화, 사회 제도 전 부문에서 마찬가지다. 반면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의의로 변화가 더딘 곳도 있다. 대학교가 바로 그런 예다. 학문의 발전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는 역할에 걸맞지 않게 대학은 매우 보수적이며, 따라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비효율적이다.
대표적인 예는 안식년이라는 제도다. 고작 6년을 일하면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1년을 쉬게 해주다니. 세상에 이런 한가한 직장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그것도 국내에 있으면 제대로 못 쉴까봐 외국으로 '교환교수'라는 허울 아래 사실상의 휴가를 보낸다. 기술과 학문을 발전시켜야 할 큰 책임을 진 사람들을 이렇게 놀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 하나의 비효율은 학장/총장의 선출 방식이다. 이들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연구가 아니라 행정이다. 실제로 보직교수는 바빠서 연구는 커녕 지도학생조차 볼 틈이 없다. 이런 교수 걸리면 공짜졸업땡큐. 학장이 맡은 행정 업무에는 연구비 확보, 확보한 연구비 집행, 학과의 비전 제시, 학과 교수와 행정직원 관리, 타 학과 및 단대간의 업무 조정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저렇게 써 놓으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쉽게 말해, 예산 따오고, 따온 돈 관리하고, 사업 아이템 찾고, 밑에 직원들 갈구고, 옆에 조직과 싸우는 일이다. 정확히 회사의 경영진들이 하는 일과 똑같다. 문제는, 과연 교수가 이런 일을 잘하느냐이다.
애초에 교수라는 건 연구 능력을 보고 뽑은 사람들이지, 경영 능력은 보통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교수들끼리 자기들 중에 만만한 사람을 투표로 뽑는다. 교수를 주업으로 하다가 '곁다리로' 다른 일도 맡는 것 뿐이다. 일반 회사는 상당히 다르다. 처음부터 경영과 연관된 교육을 받은 사람을 뽑은 뒤, 수십 년간 경영 업무만 맡기고, 혹독한 경쟁을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한 사람을 솎아 내며, 365일 24시간 오너의 갈굼을 받으며 일을 한다.
교수는? 연구성과에 대한 압박은 있어도 기본적으로 철밥통이다. 일반 회사처럼 좌천과 부서이동, 명퇴를 걱정하면서 매년 연말을 보낼필요가 없다. 게다가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독립된 존재고 상명하복의 관계가 아니다. 다른 교수와 업무를 조정하거나 협업을 하는 데에 서툴다. 자존심까지 세다 보니 타 교수와의 갈등을 잘 극복하지 못한다. 회사원은? 엿같은 인간이 있어도 꾹꾹 참으며 다녀야 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어떻게든 일을 마치는데 매진한다. 아랫사람을 다루는 것도 상당히 다르다. 부하 직원들을 끊임없이 어스르고 다독여야 하는 회사와 달리, 교수는 자기를 받들어 모시는 대학원생 앞에서 작은 왕국의 왕처럼 군림한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학교 내의 다른 조직 혹은 학교 외의 기관이나 회사와 협업을 할 때도 권위적인 태도가 묻어난다.
게다가 보직 업무는 당근과 채찍이 뚜렷하지 않다. 잘해도 별다른 이득이 없고 못해도 큰 손해가 없다. 잘 될 때는 성과급도 막대하지만, 잘 안 될 때는 자기 자리를 걸고 일을 추진해야 하는 회사와는 다르다. 큰 효율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경영 능력이 필요한 일이라면, 거기에 익숙한 전문 경영인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교수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학과의 방향과 미래가 달려 있는 어떻게 외부인에게 맡길 수 있는가? 라는 상식적인 반론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학과/학교보다 훨씬 큰 기업들도 기꺼이 외부의 전문가에게 의지한다. 컨설팅 업체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전략 컨설팅은 회사의 경영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자신들의 비밀을 제공해가며 비싼 돈을 치르고 구해야 할만큼 전문가의 시각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가장 중대한 반대 이유는 아마도 교수들의 보수성일 것이다. 학장은 반드시 교수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선입견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교수가 아닌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선의 여지는 있을까? 보수적인 교수들을 설득하여 새로운 제도를 채택하게 하기는, 지루한 인사 교육에서 자발적으로 웃고 발표하게 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가능한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 바로 경쟁이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식이 지금까지 먹혔던 이유는 경쟁의 원리가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학생은 많고 좋은 대학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학생은 더 많다. 하지만 출산율 저하의 여파가 대학까지 미쳐 생존이 어려워진다면, 싫건 좋건 효율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외부에서 올 수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형 대학의 출현이 그것이다. 현재의 대학은 학교법이라는 느슨한 제도 아래 상아탑의 고풍스런 면모를 간직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경영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대안 교육기관이 나타난다면, 효율이 떨어지는 다른 대학들이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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